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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1. 호랑이를 봤다- 성석제1. 책 (book) 2019. 1. 2. 14:33
성석제 작가의 글은 문체 자체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어딘지 모르게 정겨운 느낌이 듭니다.
어렸을 적 즐겨 읽던 전래동화의 스토리텔링 방식과 유사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특별히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독자는 어느새 작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가를 좋아합니다.
작가들의 철학과 숨겨져 있는 메시지를 적확히 간파하기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는 안타깝게도 그만한 문학적 통찰력과 식견이 없습니다.
문장 자체로 즐거움을 주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학을 더 선호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에 쿠엔틴 타란티노가 있습니다.
이 감독은 흔히 말해 복수극의 대가이며, 잔인한 장면을 적나라하게 연출하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능력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영화 ‘저수지의 개들’중 식당에서 수다를 떠는 장면처럼 내용 전개상 연관성이 전혀 없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장면을 특히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떠한 메타포가 있을지, 혹은 복선이 깔려있을지 유심히 관찰하게 됩니다.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런 장치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순수문학적인 장면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펄프픽션’적인 장치라고 칭합니다.
영화 '저수지의 개들'
두 번째로 내용 전개 그 자체를 진행하는 과정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때 이 장치는 메타포와 복선 없이 매우 직관적으로 진행됩니다.
영화 ‘포룸’중 벨보이를 설득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비상식적인 요구를 그의 말발만으로 설득해 냅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는 관객들도 설득 당합니다.
영화 'Four Rooms'
필자는 성석제 작가의 작품에서 이 ‘펄프픽션’적인 장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가볍게 담아냅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그가 그리고 싶은 건 휴머니즘이었던 것 같습니다.
호랑이라는 ‘이상’에 대척되는 보통 인간을 매우 평범하게 희화화시킵니다.
희극적 텍스트 안의 비극, 이야기의 큐비즘(cubism) 회화적 배치.
뭐 이런 말들이 해설에 있는데, 대충 그걸 다시 해석해 보겠습니다.
인간존재의 초월을 꿈꾸지만, 호랑이의 포효에 우스꽝스럽게 무너집니다.
보통의 인간이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세계 즉 ‘이데아(idea)’에 미치지 못하는 그 상황을 비극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41명의 화자가 연관성이 있는 듯, 없는 듯 사건이 배치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어색한 듯,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가 큐비즘 회화적 배치라고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복잡한 인간관계 구조를 큐비즘 회화적 배치를 고려하여 표현했다고 생각하긴 힘듭니다.
필자는 휴먼스케일(Human scale)이라는 개념을 더 선호합니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인간적인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실 인간의 삶 자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습과 각자의 입장과 시각이 모두 다르다는 점은 큐비즘이라는 형태도 비유하기 적절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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